ep03
오후 두 시였다.
세진이 점심을 먹으러 나간 사이 행복은 혼자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낮 햇빛이 유리문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와 진열대 위에 길게 누웠다. 과자 봉지들이 그 빛 안에서 반짝였다. 편의점 안은 조용했다. 냉장고 컴프레서 소리, 형광등 소리,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
행복은 카운터 위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박진수 형사가 다녀간 지 두 시간이 지났다. 살았다는 말은 아직 귀 안에 있었지만 이제 조금 옅어졌다. 대신 다른 것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새벽 한 시 십이 분의 화면. 검은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카운터 앞에 서 있다가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간 사람.
그때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행복은 기억을 더듬었다. 새벽 한 시 무렵이면 보통 재고 정리를 하거나 카운터에 앉아 눈을 반쯤 감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사람이 들어왔을 때 자신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상품을 집지 않고 나가는 것을 봤을 것이다. 취객이거나 잘못 들어온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카운터 앞에 서서 무언가를 말하려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때는 하지 못했다.
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들어왔다. 중년 여자였다. 두부 하나와 계란 한 판을 들고 계산대로 왔다. 행복이 바코드를 찍고 금액을 말했다. 여자가 카드를 내밀었다. 영수증은 괜찮다고 했다. 나갔다.
행복은 다시 혼자였다.
그는 서랍을 열어 수첩을 꺼냈다. 박진수 형사의 명함이 끼워져 있었다. 그는 명함을 꺼내 뒤집어 봤다. 앞면에 이름과 직책과 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뒷면은 비어 있었다. 그는 명함을 다시 수첩 사이에 끼웠다.
수첩을 넘겼다. 오래된 메모들이 있었다. 납품 업체 연락처, 아르바이트생 면접 날짜, 월세 납부일. 그 사이에 딸 수아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핸드폰에도 저장되어 있지만 수첩에도 적어두었다. 언제 적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잉크가 약간 번져 있었다.
행복은 수첩을 닫았다.
세진이 돌아온 건 두 시 삼십 분이었다. 편의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포장해 왔다. 봉투를 들고 들어오면서 행복을 봤다.
"사장님은 안 드세요?"
"나는 됐어."
"아직 아무것도 안 드셨잖아요."
행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진이 잠깐 그를 보다가 카운터 옆 작은 선반 위에 봉투를 올려놨다.
"그냥 뒀을게요."
행복은 그 봉투를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골목 입구의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오후 햇빛 아래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잠깐 멈췄다가 가는 것이 보였다. 두 명이 테이프 앞에서 서로 뭔가 이야기하다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행복은 시선을 거뒀다.
세진이 떡볶이를 먹으면서 말했다.
"근데 그 사람, 어떻게 된 거예요?"
"병원에 있대."
"의식은요?"
"없대."
세진이 젓가락을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뛰어내린 거예요?"
행복은 잠깐 그를 봤다.
"모르지."
"아." 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경찰이 왜 오는 거예요. 그냥 119만 오면 되는 거 아니에요?"
행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진도 더 묻지 않았다. 그는 눈치가 있는 아이였다.
오후 세 시가 넘어가자 손님이 조금씩 늘었다. 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아직 아니었지만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세 명이 아이스크림을 고르면서 한참 떠들었다. 행복은 그들을 보면서 계산을 했다. 아이스크림 세 개, 이천사백 원. 아이들이 거스름돈을 받아 들고 나가면서 문을 세게 닫았다. 유리문이 흔들렸다.
행복은 그 흔들림이 가라앉는 것을 봤다.
네 시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봤다. 모르는 번호였다. 02가 아니었다.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 그는 잠깐 보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저기요."
여자 목소리였다.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
"네."
"해피마트 사장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짧은 침묵이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뭔가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바깥에 있는 것 같았다.
"저, 오늘 새벽에 골목에서 발견된 사람 아세요?"
행복은 등을 세웠다.
"발견한 사람이 저입니다."
"아." 여자가 숨을 짧게 내쉬었다. "저는 그 사람 아는 사람인데요."
행복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혹시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근처에 있어요."
행복은 카운터 너머 진열대를 봤다. 세진이 선반을 정리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골목 입구의 노란 테이프가 보였다.
"지금 편의점으로 오세요."
"들어가도 돼요?"
"네."
전화가 끊겼다.
행복은 핸드폰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세진이 선반에서 고개를 들었다.
"누구예요?"
"손님."
이 분도 안 돼서 유리문이 열렸다.
여자였다. 삼십대 초반으로 보였다. 키가 작고 어깨가 좁았다. 검은 머리를 묶었고 얼굴이 창백했다. 눈 밑이 붉었다. 울었거나, 오래 잠을 못 잔 것 같았다. 회색 후드 집업을 입고 있었고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들어오면서 행복을 봤다. 그리고 카운터로 곧장 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그녀가 카운터 앞에 서서 행복을 봤다. 눈빛이 흔들렸다가 가라앉았다.
"제 오빠예요."
행복은 그 말을 받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가 새벽에 이쪽으로 온다고 해서요. 연락이 안 돼서 찾고 있었는데." 그녀가 숨을 골랐다. "경찰한테 연락이 왔어요. 아까."
"병원에 계신다고 하더군요."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다시 흔들렸다. "지금 의식이 없어요."
행복은 잠시 그녀를 봤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울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것과는 또 달랐다. 이미 울 만큼 울고 나서 이제 감각이 없어진 사람의 얼굴이었다.
"여기 오신 이유가 있으세요?"
그녀가 카운터 위에 양손을 올렸다. 손이 작았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 보였다.
"오빠가 여기 들어왔었는지 알고 싶어서요. CCTV에."
"경찰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경찰한테는 했어요." 그녀가 행복을 봤다. "근데 경찰이 보는 것 말고, 제가 직접 보고 싶어서요."
행복은 잠깐 생각했다.
개인 정보의 문제가 있었다. 경찰이 공문으로 요청한다고 했다. 그 전에 임의로 보여주는 것이 맞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카운터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행복은 세진을 봤다.
"세진아, 잠깐 나가서 담배 재고 확인해 줘."
세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카운터를 나갔다. 편의점 옆 창고 쪽으로 들어가는 문이 닫혔다.
행복은 녹화 장치 앞으로 갔다. 새벽 한 시 십이 분으로 타임라인을 맞췄다.
"여기 서보세요."
그녀가 카운터 안으로 들어왔다. 행복 옆에 섰다. 그녀에게서 희미하게 비누 냄새가 났다.
행복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 안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고개를 숙인 채로. 카운터 앞에 잠깐 서 있다가 나갔다.
그녀가 숨을 멈췄다.
화면이 끝났다.
그녀는 한동안 모니터를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행복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오빠예요."
낮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행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들어왔다가 그냥 나갔어요. 아무것도 안 사고."
그녀가 화면을 봤다. 이미 현재 시각으로 돌아간 화면. 오후의 텅 빈 골목이 보였다.
"얼마나 있었어요."
"일 분도 안 됐어요."
그녀가 입술을 다물었다. 턱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한 손을 들어 눈 밑을 한 번 눌렀다. 그리고 숨을 한 번 내쉬었다.
행복은 그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녀가 카운터를 나갔다. 편의점 문 쪽으로 걷다가 멈췄다. 뒤를 돌아봤다.
"오빠 이름은 김윤재예요. 서른여섯 살이고요."
행복은 그 이름을 들었다.
"저는 김윤서예요."
그녀가 문을 밀고 나갔다.
유리문이 닫혔다. 그녀의 모습이 유리 너머로 보이다가 골목 쪽으로 사라졌다. 폴리스라인 테이프 앞에서 잠깐 멈추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사라졌다.
창고 문이 열리면서 세진이 들어왔다.
"갔어요?"
"응."
"누구예요?"
행복은 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아는 사람."
세진이 더 묻지 않았다. 다시 선반 정리를 시작했다.
행복은 카운터 위에 놓인 세진의 떡볶이 봉투를 봤다. 이미 식었을 것이었다. 그는 봉투를 열었다. 떡볶이가 소스 안에 굳어 있었다. 젓가락을 집어 한 개를 먹었다. 차갑고 달고 매웠다. 그는 천천히 씹었다.
창밖으로 오후 햇빛이 기울고 있었다.
김윤재. 서른여섯.
행복은 그 이름을 소리 내지 않고 한 번 더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