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해가 완전히 기울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자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각도가 바뀌었다. 진열대 위에 누워 있던 빛이 조금씩 올라가다가 천장 쪽으로 사라졌다. 형광등 불빛이 다시 편의점의 주인이 됐다.
세진이 퇴근한 건 여섯 시였다.
"사장님, 저 가볼게요."
"어."
"내일 봐요."
문이 닫혔다. 행복은 혼자였다.
저녁 손님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퇴근길 직장인들이 맥주를 사 갔고, 중학생 둘이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골랐다. 한 아이가 뜨거운 물을 붓다가 손에 조금 튀겼다. 행복이 카운터 서랍에서 일회용 밴드를 꺼내 줬다. 아이가 고맙습니다, 하고 꾸벅 인사했다. 행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곱 시가 됐다. 여덟 시가 됐다.
손님이 뜸해지는 시간이었다. 행복은 카운터에 앉아서 납품 업체 전화를 한 통 했다. 냉동 만두 재고가 부족했다. 업체 직원이 내일 오전에 넣어주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수첩에 메모했다.
수첩을 덮으면서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박진수. 마포경찰서 형사과.
그 옆에 수아의 번호가 적힌 페이지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수첩을 서랍에 밀어 넣었다.
아홉 시가 조금 지났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봤다. 낮에 걸려왔던 번호였다.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 김윤서.
그는 받았다.
"여보세요."
"저예요. 낮에 갔던."
"네, 알아요."
잠깐 사이가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바람 소리는 없었다. 실내에 있는 것 같았다.
"오빠 의식이 돌아왔어요."
행복은 등을 세웠다.
"다행이네요."
"네."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가 가라앉았다. "잠깐이었어요.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는데, 의사가 좋은 신호라고 했어요."
행복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냥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낮에 보여주셔서."
"잘 됐네요."
그녀가 전화를 끊으려는 것 같았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행복은 그 침묵 안에서 그녀가 무언가를 더 말할지 말지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혹시 오빠가 편의점 들어왔을 때, 정말 아무 말도 안 했어요?"
행복은 천천히 생각했다.
새벽 한 시 십이 분의 화면. 고개를 숙인 채 카운터 앞에 서 있다가 나간 사람. 그때 자신이 어서 오세요, 라고 했을 것이다. 상대가 뭔가 말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다.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때 워낙."
"그렇죠."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요, 물어봐서."
"아닙니다."
전화가 끊겼다.
행복은 핸드폰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형광등이 윙 소리를 냈다. 냉장고 컴프레서가 낮게 돌아갔다.
그는 기억을 다시 더듬었다.
새벽 한 시 무렵. 재고 정리를 하고 있었거나 카운터에 앉아 있었거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라고 했다. 상대가 카운터 앞까지 왔다. 검은 옷. 고개를 숙인 자세.
그리고.
행복은 눈썹을 좁혔다.
뭔가 있었다. 아주 작은 것. 상대가 카운터 앞에 서 있을 때, 자신이 고개를 들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상대의 입이 움직였던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움직이려다가 멈춘 것 같기도 했다.
확실하지 않았다.
피곤한 새벽에 편의점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때는 그랬다.
행복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열대를 돌았다. 상품들을 정리했다. 과자 봉지가 앞으로 나오도록 당겼고, 음료수 병들을 줄 세웠다. 손이 움직이는 동안 머리는 다른 데 있었다.
김윤재. 서른여섯.
자신과 여섯 살 차이였다.
그 나이의 사람이 새벽에 혼자 골목에서.
행복은 생각을 멈췄다. 라면 코너 앞에 서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손을 움직였다. 라면 봉지를 앞으로 당기고, 뒤쪽에 재고를 채웠다.
계산을 끝까지 하면 안 된다.
열 시가 됐다. 야간 근무가 시작됐다. 행복은 앞치마를 다시 걸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냥 계속 서 있는 것이었다.
열한 시에 취객이 한 명 들어왔다. 소주를 더 사려고 했는데 행복이 거절했다. 남자가 잠깐 흐릿한 눈으로 행복을 봤다가 나갔다. 문이 닫히면서 유리에 남자의 손자국이 남았다. 행복은 카운터 아래서 행주를 꺼내 유리를 닦았다.
자정이 지났다.
편의점 안은 조용했다. 손님이 없었다. 행복은 카운터에 앉아 커피믹스를 타서 마셨다. 뜨거웠다. 이번에는 혀를 데지 않으려고 천천히 불었다.
모니터를 봤다. 네 칸의 화면. 편의점 내부, 계산대 정면, 편의점 바깥 정면, 건물 옆 골목.
골목 화면.
어젯밤 이 시간에 저기서.
행복은 시선을 거뒀다.
커피를 마저 마셨다.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핸드폰을 꺼냈다. 수아의 연락처를 열었다. 마지막 문자. 생일 축하해, 수아야. 잘 지내고 있지? 읽음 표시 없음.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창밖을 봤다. 동교동의 새벽은 조용했다. 가끔 택시가 지나갔다. 편의점 앞 벤치에 아무도 없었다. 가로등 불빛이 아스팔트 위에 동그랗게 고여 있었다.
어젯밤이랑 같은 시간이었다.
행복은 그것을 알면서도 골목 쪽을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시선이 자꾸 모니터 오른쪽 아래 칸으로 갔다. 빗물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골목. 가로등이 조용히 켜져 있었다. 깜빡이지 않았다.
그는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살았다.
박 형사가 한 말이었다. 김윤서가 한 말이기도 했다. 의식이 돌아왔다. 잠깐이었지만.
행복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어젯밤에 떨리던 손이 지금은 가만히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잠깐 봤다.
편의점 문이 열렸다.
젊은 여자였다. 이십대 초반으로 보였다. 헤드폰을 목에 걸고 들어와서 냉장고 앞으로 곧장 갔다. 탄산음료 하나를 꺼내 계산대로 왔다. 행복이 바코드를 찍었다.
"천오백 원입니다."
여자가 카드를 내밀었다. 단말기에 찍었다. 영수증이 나왔다. 여자가 받지 않고 나갔다. 영수증이 카운터 위에 남았다.
행복은 영수증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다시 조용해졌다.
그는 카운터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천장을 봤다. 형광등이 미세하게 윙 소리를 냈다. 오래된 소리였다. 매일 밤 듣는 소리였다.
김윤재가 이 편의점에 들어왔을 때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행복은 그 생각을 오래 가지고 있었다.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자신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형광등 소리를 들었다. 냉장고 소리를 들었다. 밖에서 택시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한 시 이십 분이었다.
어젯밤 이 시간에 김윤재는 이 편의점 안에 있었다. 카운터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갔다. 그리고 골목에서.
행복은 눈을 뜨지 않았다.
빗소리는 없었다. 오늘 밤은 맑았다. 창문 너머로 별이 보일 것 같았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그냥 형광등 소리를 들었다. 냉장고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눈을 떴다.
서랍을 열었다. 수첩을 꺼냈다. 박진수 형사의 명함을 꺼내서 뒷면을 봤다. 비어 있었다. 그는 볼펜을 집어 뒷면에 천천히 썼다.
한 시 십이 분. 들어옴. 카운터 앞. 고개 숙임. 입 움직임 — 불확실. 나감.
그는 볼펜을 내려놓고 자신이 쓴 것을 봤다.
불확실이라고 썼다.
하지만 완전히 없었던 일은 아니었다.
그는 명함을 다시 수첩 사이에 끼웠다. 서랍을 닫았다.
밖에서 고양이 소리가 한 번 들렸다. 골목 어딘가에서. 그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행복은 카운터에 앉아서 창밖의 가로등 불빛을 봤다. 아스팔트 위에 동그랗게 고인 빛. 그것이 조용히 거기 있었다.
새벽 한 시 삼십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