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야 비가 그쳤다.
행복은 그것을 소리로 알았다. 지붕을 두드리던 리듬이 가늘어지다가 어느 순간 끊어졌다. 유리문 너머 아스팔트가 젖어서 빛을 반사하고 있었고, 가로등 아래로 물웅덩이들이 생겨 있었다. 4월 새벽의 공기가 유리문 틈새로 스며들었다. 차갑고 습하고,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행복은 카운터에 팔꿈치를 올리고 모니터를 바라봤다. 오른쪽 아래 골목 화면. 빗물이 아스팔트 위를 얕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까 사람이 쓰러져 있던 자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흔적도 없었다. 물이 다 씻어갔다.
그는 눈을 비볐다.
몸이 무거웠다. 야간 근무 석 달째에 접어들면서 몸이 무거워지는 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 무게가 조금 달랐다. 피로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이 어깨에 얹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름 붙이려다가 그만뒀다.
계산을 끝까지 하면 안 된다.
여섯 시가 가까워지자 손님이 들어왔다. 건설 현장 조끼를 입은 남자였다. 삼각김밥 두 개와 캔커피를 집어 들었다. 계산을 하면서 행복과 눈을 한 번 마주쳤다가 바로 시선을 내렸다. 행복이 거스름돈을 건네면서 수고하세요, 라고 말했고 남자는 아무 대답 없이 나갔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오는 사람이었다. 이름도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냥 삼각김밥 두 개와 캔커피였다.
그 사람이 나가고 나서 행복은 다시 혼자였다.
그는 카운터 서랍을 열어 수첩을 꺼냈다. 경찰관이 두고 간 명함이 하나 있었다. 서울 마포경찰서 형사과. 이름은 박진수. 연락처 두 개. 그는 명함을 수첩 사이에 끼워 넣었다.
어제 밤, 아니 오늘 새벽에 떨어진 사람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생각이 났다. 살았는지. 맥박이 있었다. 가늘었지만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 정도면 어떻게든 됐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팔이 꺾여 있던 각도가 자꾸 눈앞에 떠올랐다.
행복은 수첩을 닫고 서랍을 밀어 넣었다.
여섯 시 십오 분. 낮 알바 박세진이 들어온 건 여섯 시 오십 분이었다. 스물두 살.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이어폰을 한쪽만 꽂은 채 들어왔다.
"사장님, 어제 여기 경찰차 왔었어요?"
행복은 잠시 그를 봤다.
"어떻게 알았어?"
"아침에 오면서 봤는데 골목 쪽에 폴리스라인 테이프 쳐져 있던데요."
행복은 몰랐다. 경찰관들이 나간 이후로 골목 쪽을 다시 나가보지 않았다.
"사람이 쓰러져 있었어. 골목에."
"죽었어요?"
"몰라."
세진이 모자를 벗으며 카운터 안으로 들어왔다. 앞치마를 걸치면서 모니터를 흘끗 봤다.
"CCTV에 찍혔어요?"
"응."
"와." 세진이 낮게 말했다. 더 묻지는 않았다. 눈치가 있는 아이였다. 행복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필요 이상으로 말을 보태지 않는 것.
인수인계를 간단히 끝냈다. 냉장고 음료 재고 부족한 것, 라면 코너 정리 필요한 것, 오전 중에 담배 납품 올 것. 세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했다.
행복은 앞치마를 벗어 카운터 아래 걸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네. 주무세요."
편의점을 나오면서 행복은 자연스럽게 골목 쪽을 봤다. 세진 말대로 골목 입구에 노란 테이프가 처져 있었다. 폴리스라인 문구가 테이프 위에 반복적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새벽에 비가 와서인지 테이프가 축 처져 있었다. 그 너머로 골목 안쪽이 보였다. 빗물이 흘러간 자리가 아스팔트 위에 줄기처럼 남아 있었다.
행복은 멈추지 않고 걸었다.
그가 사는 곳은 편의점에서 걸어서 칠 분이었다. 마포구 동교동 주택가 안쪽, 반지하 원룸. 월세 사십오만 원. 계단을 내려가면서 항상 습기 냄새가 났다. 오늘은 비가 와서 더 심했다. 벽면에 손을 대면 차갑고 약간 끈적한 느낌이 났다. 그 느낌에도 이제 익숙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슬리퍼를 벗었다. 슬리퍼 바닥이 아직 젖어 있었다. 새벽에 골목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젖은 것이 마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슬리퍼를 신발장 옆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좁았다. 싱글 침대, 옷장, 작은 책상, 전기밥솥. 책상 위에 청구서 몇 장이 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돌렸다. 커튼을 쳤다. 반지하라 창문으로 사람들의 발이 보이는 구조였는데, 커튼을 치면 그것도 차단됐다.
침대에 누웠다.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양말도 벗지 않았다. 천장을 봤다. 천장 구석에 곰팡이 자국이 있었다. 전에 없던 것이었다. 언제 생겼는지 몰랐다. 겨울 동안 생긴 것 같기도 했다.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골목에서 봤던 것들이 눈꺼풀 안쪽에 있었다. 아스팔트 위로 번지던 검붉은 빛. 이상한 각도로 꺾인 팔. 벗겨진 신발 한 짝. 그 신발이 자꾸 생각났다. 왜 그 신발이 자꾸 생각나는지 알 수 없었다.
뒤척이다가 옆으로 돌아누웠다.
딸 생각이 났다. 아까 편의점에서도 났는데, 여기서도 났다. 수아가 열두 살 때 빗속을 뛰어갔던 기억. 편의점 처마 밑에서 웃던 얼굴. 그때 수아의 운동화가 흠뻑 젖어 있었다는 것도 기억이 났다. 흰 운동화였는데 발목까지 다 젖어서 양말이 비쳐 보였다.
행복은 눈을 떴다.
천장을 다시 봤다. 곰팡이 자국.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켰다. 수아의 번호가 저장된 연락처로 들어갔다. 마지막 문자가 보였다. 자신이 보낸 것이었다. 생일 축하해, 수아야. 잘 지내고 있지? 라고 썼고, 읽음 표시는 없었다.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천장을 오래 봤다.
잠은 한 시간쯤 지나서 왔다. 깊지 않은 잠이었다. 꿈이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꿈 안에서도 빗소리가 들렸다는 것만 알았다. 눈을 떴을 때 방 안이 밝았다. 커튼 틈새로 오전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핸드폰을 봤다. 열한 시 삼십 분.
부재중 전화가 하나 있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02로 시작하는 서울 번호. 그는 잠시 그 번호를 바라봤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두 번 울리고 받았다.
"여보세요."
"아, 해피마트 사장님이세요? 저 마포경찰서 박진수 형사입니다."
행복은 등을 세웠다. 침대 위에서 반쯤 일어났다.
"네, 저 김행복입니다."
"아, 네. 오늘 오전에 찾아뵈려고 했는데 편의점에 안 계신다고 해서요.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잠깐 침묵이 있었다. 박 형사가 뭔가를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에 발견하신 분, 지금 병원에 계세요. 다행히 살아 계십니다."
행복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네. 근데 의식이 아직 없어서요. 그래서 신원 파악이 좀 어려운 상황입니다." 박 형사가 말을 이었다. "사장님, 혹시 그 분 새벽에 편의점에 들어오셨던 적 있는지 확인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아까 CCTV 내부 화면도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지금 오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한 시간 후에 찾아뵐게요."
전화가 끊겼다.
행복은 침대 위에 잠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말이 귀 안에 남아 있었다. 가늘고 빠른 맥박. 실처럼 가는 맥박이었지만 있었다. 있었으니까 살았다.
그는 일어나서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눈 밑이 거뭇했다. 면도를 며칠 째 안 했는지 수염이 고르지 않게 자라 있었다. 그는 찬물로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눈꺼풀 위로 흘렀다. 정신이 조금 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세진이 카운터 뒤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행복이 들어오자 얼른 내려놓았다.
"벌써 오셨어요?"
"잠깐 있다가 경찰 온대."
"아."
행복은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서 녹화 장치 앞에 섰다. 어젯밤 열 시부터 오늘 새벽 세 시까지의 내부 화면을 돌려봤다. 배속으로 돌리면서 인물들을 확인했다. 편의점을 지나간 사람들이 화면 안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담배 사러 온 중년 남자, 맥주 두 캔을 집어 든 젊은 여자, 라면을 고르다 한참 서 있던 남자.
그리고 새벽 한 시 십이 분.
행복은 배속을 풀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카운터 앞까지 왔다가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갔다. 화면 안에서의 시간은 채 일 분이 안 됐다. 얼굴이 카메라 방향을 향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로 들어왔다가 나갔다.
행복은 화면을 정지시켰다.
검은 옷이었다. 골목에서 봤던 사람과 같은 색이었다.
물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많다.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멈춘 건 다른 이유였다.
사람이 카운터 앞에 서 있는 화면. 고개를 숙인 채로. 그 자세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말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면 말할 수 없었던 사람처럼.
행복은 그 화면을 오래 봤다.
박진수 형사가 도착한 건 열두 시 이십 분이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나이는 행복과 비슷해 보였다. 회색 점퍼를 입고 있었고, 들어오면서 세진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행복은 그를 카운터 안으로 안내했다. 박 형사가 모니터 앞에 서서 화면을 봤다. 행복이 새벽 한 시 십이 분으로 타임라인을 맞추고 재생했다.
검은 옷의 사람이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박 형사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화면을 뚫어지게 봤다. 재생이 끝나자 말했다.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요."
행복은 다시 재생했다.
박 형사가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으로 모니터 화면을 찍었다.
"이 시간에 사장님 직접 계셨던 거죠?"
"네."
"이 사람이 들어왔을 때 기억하세요? 뭔가 말을 했다거나."
행복은 잠깐 생각했다.
"아무 말 안 했어요. 들어왔다가 그냥 나갔습니다. 그때는 크게 신경을 안 썼어요."
박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첩에 적었다.
"얼굴은 못 보셨고요."
"네.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또 잠깐 침묵이 있었다. 박 형사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그 분, 신발이 한 짝 없었는데."
행복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혹시 편의점 안에서 신발이 발견됐다거나 한 건 없었나요."
행복은 주위를 봤다. 진열대 아래, 카운터 주변. 아무것도 없었다.
"없었어요."
"그렇군요." 박 형사가 수첩을 닫았다. "CCTV 파일은 저희 쪽에서 공문으로 요청 드리겠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그때까지 삭제 안 하시면 됩니다."
"네."
박 형사가 카운터를 나오면서 행복을 봤다.
"새벽에 발견 못 하셨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행복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라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박 형사가 나갔다.
세진이 카운터 옆에서 냉장고 음료를 정리하다가 행복을 봤다.
"사장님, 점심은요?"
"나중에."
행복은 의자에 앉았다. 창밖을 봤다. 낮 햇빛이 아스팔트 위의 물기를 말리고 있었다. 어젯밤 비가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하늘이 맑았다. 골목 입구의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봄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살았다는 말이 아직 귀 안에 있었다.
행복은 그것을 오래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