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새벽 두 시 사십칠 분.
김행복은 유통기한이 사흘 지난 삼각김밥을 진열대에서 꺼내며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참치마요 두 개, 불고기 하나, 매실 하나. 네 개. 하루 매출에서 원가를 빼면 또 마이너스였다. 그는 계산을 멈췄다. 계산을 끝까지 하면 잠을 못 잔다는 걸 마흔두 해 살면서 늦게나마 배웠다.
밖에는 4월의 이른 새벽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빗소리가 낮게 깔렸다. 아스팔트 위에 가로등 불빛이 번지는 모양이 기름막처럼 퍼져 있었고, 간간이 지나가는 택시의 헤드라이트가 그 위를 훑고 지나갔다.
편의점 이름은 '해피마트'였다. 전 주인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인수했다. 처음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간판을 볼 때마다 눈을 피한다.
행복은 유통기한 지난 상품들을 검은 봉지에 담으며 허리를 폈다. 허리가 삐걱거렸다. 밤 열 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의 야간 근무는 원래 아르바이트생이 맡았지만 석 달 전부터 혼자 서고 있었다. 인건비를 아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낮에는 낮 알바가 보고, 밤에는 자신이 보고, 그 사이 세 시간을 쪽잠으로 때웠다.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건 알았다. 그것도 계산을 끝까지 하면 안 되는 종류의 생각이었다.
카운터 뒤로 돌아오면서 그는 습관적으로 모니터를 흘끗 봤다. CCTV 화면 네 칸. 왼쪽 위가 편의점 내부, 오른쪽 위가 계산대 정면, 왼쪽 아래가 편의점 바깥 정면, 오른쪽 아래가 건물 옆 골목.
화면은 늘 조용했다. 새벽 두 시 이후에는 취객이 한두 명 들어오거나, 편의점 앞 벤치에 누군가 쪼그리고 앉았다 가는 정도였다. 행복은 그 화면들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카운터에 앉아 늘 보는 것들이 너무 익숙해지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커피믹스 한 봉지를 뜯어 종이컵에 부었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으면서 비가 조금 더 세지는 소리를 들었다. 4월 비치고는 차가웠다. 아까 담배를 사러 왔던 중년 남자가 우산도 없이 나갔는데, 많이 젖었겠다 싶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너무 뜨거웠다. 혀끝이 데었다. 그는 컵을 내려놓고 잠시 천장을 바라봤다.
딸에게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낸 게 언제였더라.
한 달 전이었다. 아니, 더 됐나. 생일이 2월이었으니까. 생일 축하한다고 보냈는데 읽음 표시가 뜨지 않았다. 수아가 차단했는지, 아니면 번호를 바꿨는지. 전 아내 정미에게 물어보는 건 자존심이 상해서 못 했다. 아니, 사실은 무서웠다. 대답을 들으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행복은 다시 커피를 들었다. 아까보다 덜 뜨거웠다.
모니터 화면 중 오른쪽 아래, 골목 화면이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처음엔 빗줄기가 카메라 렌즈를 타고 흐르는 줄 알았다. 화면 왼쪽 위 모서리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0.5초도 안 됐을 것이다.
행복은 컵을 내려놓았다.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는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화면은 다시 조용했다. 빗줄기만 흘렀다. 골목 안쪽에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다가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다. 착각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피곤하면 눈이 이상한 걸 본다. 형광등 불빛 아래 너무 오래 있으면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그런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발이 움직였다.
유리문을 밀고 나가자마자 찬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다. 4월 새벽의 공기는 겨울의 잔재를 품고 있었다. 행복은 슬리퍼 바닥에 빗물이 올라오는 걸 느끼면서 건물 옆 골목 쪽으로 걸어갔다.
골목 입구에서 멈췄다.
처음에는 쓰레기봉투인 줄 알았다.
검은 봉지들이 쌓여 있는 골목 한켠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행복은 숨을 참았다. 취객인가 싶었다. 이 골목에 가끔 그런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는 그럴 때마다 흔들어 깨우거나, 심하면 119에 전화했다.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갔을 때, 무릎이 굳었다.
사람은 엎드린 채 쓰러져 있었다. 빗물이 얼굴 옆으로 흘렀다. 팔 하나가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옷이 흠뻑 젖어 있었는데, 젖은 것이 빗물만이 아니었다. 검붉은 빛이 빗물에 섞여 아스팔트 위로 번지고 있었다.
행복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빗소리가 귀를 채웠다. 아주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렸다. 가로등이 다시 깜빡였다.
그는 무릎을 꿇고 손을 뻗었다. 어깨를 건드렸을 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목 옆에 손가락을 댔다. 맥박은 있었다. 가늘고 빠른, 실처럼 가는 맥박이.
행복은 일어서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손이 떨렸다. 그는 자신의 손이 떨리는 걸 보면서 119를 눌렀다.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해피마트 옆 골목이요. 빨리요."
통화를 끊고 그는 다시 쪼그려 앉았다. 사람의 얼굴을 보려고 몸을 기울였다. 빗물이 눈에 들어와 눈을 깜빡였다. 가로등 불빛이 흔들렸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부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불분명했다. 나이를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신발 한 짝이 벗겨져 있었다.
행복은 그 벗겨진 신발을 오래 바라봤다.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일어서서 골목 입구에 서서 구급차를 기다렸다. 빗줄기는 여전히 내렸다. 슬리퍼 안에 물이 가득 찼다. 그는 차갑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구급대원들이 뛰어왔다. 그들이 쓰러진 사람 주위로 모이면서 행복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순찰차도 도착했다. 경찰관 두 명이 내리면서 그를 봤다.
"신고하신 분이에요?"
"네."
"발견 경위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행복은 편의점 안에서 CCTV를 보다가 이상한 것을 봤다고 말했다. 경찰관이 수첩을 꺼내며 적었다. 이름, 나이, 연락처. 행복은 천천히 대답했다.
"CCTV가 있다고 하셨는데, 저장이 되나요?"
"네, 됩니다. 한 달 치 저장돼요."
경찰관이 동료를 봤다.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저희가 다시 방문해도 될까요? 아니면 지금 바로 확인 가능하세요?"
행복은 편의점을 돌아봤다. 유리문 너머로 형광등 불빛이 하얗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진열대의 상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카운터 위에 식어가는 커피 한 컵.
"지금 보셔도 됩니다."
그들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행복은 카운터 뒤로 가서 녹화 장치 앞에 섰다. 경찰관 두 명이 나란히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행복은 타임라인을 새벽 두 시 사십 분으로 돌렸다.
화면이 재생됐다.
오른쪽 아래, 골목 화면.
빗줄기. 가로등. 골목 벽면.
그리고, 화면 왼쪽 위 모서리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행복은 일시정지를 눌렀다.
경찰관 한 명이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아무 말이 없었다. 다른 경찰관도 말이 없었다.
"다시 한번 재생해 주시겠어요?"
행복은 다시 재생했다.
이번에는 자신도 제대로 봤다.
사람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 화면 모서리를 스치듯 지나갔기 때문에 전체가 찍히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사람이었다. 팔이 펼쳐져 있었다. 머리가 아래를 향해 있었다.
행복의 입안이 말랐다.
경찰관이 그를 봤다.
"이 건물 바로 옆이 몇 층짜리예요?"
행복은 잠시 생각했다. 편의점 건물은 4층이었다. 옆 건물은.
"열두 층이요."
경찰관이 다시 화면을 봤다.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편의점 안은 조용했다. 빗소리만 유리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형광등이 미세하게 윙 소리를 냈다. 행복은 카운터 앞에 서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아까부터 손이 멈추지 않고 떨리고 있었다.
경찰관이 말했다.
"당분간 이 녹화 파일 삭제하지 마세요. 저희가 공식 요청서 들고 다시 오겠습니다."
"네."
"그리고 혹시 오늘 새벽에 이상한 사람 보셨거나, 연락 온 게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네."
경찰관들이 나갔다. 구급차도 떠났다. 사이렌 소리가 멀어지면서 골목은 다시 빗소리만 남았다.
행복은 혼자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
모니터를 봤다. 화면은 다시 현재 시각을 재생하고 있었다. 오른쪽 아래 골목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빗줄기만 흘렀다. 아까 사람이 쓰러져 있던 자리에는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자국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았다.
커피는 완전히 식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마셨다. 차가웠다. 커피 특유의 쓴맛이 혀 위에 오래 남았다.
창밖에서 비는 계속 내렸다.
행복은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냥 빗소리를 들었다. 형광등 소리를 들었다. 냉장고 컴프레서가 돌아가는 낮은 진동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유도 없이, 딸 생각이 났다.
수아가 열두 살 때, 함께 빗속을 뛰어간 적이 있었다. 우산이 없어서 둘이 가방으로 머리를 막으면서 편의점까지 뛰었는데, 편의점 처마 밑에 서서 수아가 웃으며 말했다. 아빠, 나 완전 다 젖었잖아. 그때 수아의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딸의 웃음소리를 들은 기억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은 더 웃는 얼굴을 봤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지 행복은 알 수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빗소리가 지붕을 두드렸다.
새벽 세 시 이십 분이었다. 아침 여덟 시까지는 아직 네 시간 사십 분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