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junkim
재활실 문에는 아무 장식이 없었다.
흰 문. 손잡이 아래 작은 스티커 하나. 재활의학과 운동치료실. 김고기는 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안에서 기계 소리가 새어 나왔다. 뭔가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소리. 벨트 위를 걷는 발소리.
문을 밀었다.
냄새가 먼저 왔다. 고무 매트와 땀과, 어딘가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 넓지 않은 공간에 기구들이 줄지어 있었다. 트레드밀 두 대, 자전거 두 대, 한쪽 벽에 거울이 길게 붙어 있었다. 거울 속에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외투가 컸다. 얼굴이 창백했다.
김고기는 시선을 거뒀다.
"김고기 씨?"
물리치료사가 클립보드를 들고 다가왔다. 젊었다. 눈이 또렷하고 목소리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 선생입니다. 오늘부터 담당이에요."
악수를 청했다. 김고기는 손을 내밀었다. 악력이 셌다. 건강한 사람의 손이었다.
이 선생이 클립보드를 넘겼다. 표가 빽빽했다. 요일마다 칸이 나뉘어 있고, 각 칸 안에 운동 이름과 횟수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월요일 첫 줄부터 읽었다. 호흡 운동. 하지 근력. 균형 훈련. 보행.
"처음엔 가볍게 시작해요. 몸이 기억을 잃어버린 거라서—"
"기억을요?"
"네. 오래 누워 계셨으니까요. 근육이 쓰는 법을 잊어요. 다시 가르쳐줘야 합니다."
김고기는 표를 내려다봤다.
몸이 기억을 잃어버린 거라서.
오십 년을 써온 몸이었다. 새벽 시장 다니고, 무거운 고기 박스 들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던 몸. 그게 잊어버렸다고. 다시 가르쳐야 한다고.
클립보드 종이가 손끝에서 살짝 떨렸다.
이게 정말 나를 살릴까.이 선생이 트레드밀 옆에 섰다.
"속도는 제가 맞춰드릴게요. 그냥 걷기만 하시면 됩니다."
걷기만. 김고기는 손잡이를 잡고 벨트 위에 올라섰다. 기계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이 따라갔다. 한 발, 두 발. 어렵지 않았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3분쯤 지났을 때 허벅지가 당기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평지를 걷는 것뿐인데. 속도도 느린데. 김고기는 손잡이를 더 꽉 쥐었다. 5분이 지나자 종아리가 굳어오는 느낌이 왔다. 7분째, 숨이 짧아졌다. 가슴이 조여들었다. 멈추고 싶었다. 발을 옆으로 빼면 됐다. 그냥 내려서면 됐다.
"조금만요."
이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시가 아니었다. 그냥 거기 있다는 소리였다.
김고기는 정면을 봤다.
거울이었다.
거울 속에 여자가 있었다. 손잡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입을 반쯤 벌리고, 허리가 약간 구부러진 채로 걷고 있었다. 다리가 가늘었다. 팔뚝에 화상 흉터가 보였다. 외투 소매 밖으로 삐져나온 그것.
김고기는 그 흉터를 오래 봤다.
정육식당 불판 모서리. 쓰러지면서 긁혔던 것. 뜨거웠던 것. 그때 이 몸은 아직 뭔가를 원하고 있었다. 쓰러지면서도 고기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 정도로 질긴 몸이었다.
발이 벨트를 밟았다. 한 발. 또 한 발.
허벅지가 타들어갔다. 그래도 밟았다.
고기는 불 위에서 익는다. 그게 고기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발이 멈추지 않았다.재활실을 나오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신발 끈을 다시 묶는 데 두 번 실패했다.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릎을 꿇는 것도, 일어서는 것도, 전부 느렸다. 이 선생이 옆에서 기다렸다.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냥 기다렸다.
복도로 나오자 찬 공기가 뺨을 건드렸다. 병원 특유의 서늘함이었다. 형광등 아래 복도가 길게 뻗어 있었다. 김고기는 벽에 손을 짚고 천천히 걸었다. 허벅지가 굳어 있었다. 종아리는 무거웠다.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탔다.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끝이 둔했다.
1층 로비를 지나 병원 옆 건물 쪽으로 가는 유리 복도가 있었다. 이 선생이 그쪽으로 걸었다. 김고기도 따라갔다.
유리 너머로 카페가 보였다.
카페는 병원 건물과 연결된 상가 1층에 있었다. 통유리 창이 복도 쪽을 향해 나 있었다. 안이 훤히 보였다.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점심 시간이 막 지난 참이었다.
한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중년 남자 둘이었다. 앞에 놓인 건 샌드위치와 커피가 아니었다. 도시락 용기였다. 뚜껑이 열려 있었다. 불고기였다. 간장 양념에 볶은 것. 냄새는 유리를 뚫고 오지 않았지만 색깔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윤기 흐르는 갈색, 가장자리가 살짝 탄 것, 파가 섞인 것.
남자들은 아무 말 없이 먹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냥 먹고 있었다. 당연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처럼.
김고기는 유리 앞에서 멈췄다.
발이 저절로 멈춘 것이었다. 의식하지 않았다.
남자 하나가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올렸다. 한 점이 들려 올라갔다. 빛이 거기에 잠깐 맺혔다가 사라졌다. 입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씹으면서 휴대폰을 봤다. 고기가 맛있다는 것도, 자신이 지금 뭔가 대단한 것을 누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몰라도 됐다. 원래 그런 거였다.
김고기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유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허벅지가 욱신거렸다. 손잡이를 잡았던 손바닥이 아직 빨갰다. 몸이 이 꼴인데 저 안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아무것도 모르게, 그냥 먹고 있었다.
나도 저랬겠지.
아니. 저것보다 더했겠지. 오십 년이었으니까.
유리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반투명하게. 안의 불고기 위에 포개진 것처럼. 김고기는 그 얼굴을 봤다. 창백하고 피곤하고, 머리카락이 귀 뒤로 넘어가 있는 얼굴. 재활실 거울에서 본 것과 같은 얼굴이었다. 낯선데 자신이었다.
삼켰다. 침이 아니었다. 뭔가 더 묵직한 것이었다.
"김고기 씨."
이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가 두 걸음 뒤에 서 있었다. 클립보드는 이미 가방 안에 들어가 있었다. 흰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재촉하지 않았다. 유리 안을 봤는지 안 봤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내일도 올 거죠?"
짧은 물음이었다. 별 것 없는 말이었다. 일과가 끝날 때마다 할 것 같은 말이었다.
김고기는 유리에서 시선을 거뒀다.
안쪽 남자들은 아직 먹고 있었다. 도시락 용기가 거의 비어 있었다. 곧 뚜껑을 닫고 일어날 것이었다. 커피를 들고 나올 것이었다. 다음 끼니를 생각할 것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김고기는 이 선생을 봤다.
젊은 얼굴이었다. 또렷한 눈이었다. 오늘 하루 동안 이 사람은 트레드밀 속도를 세 번 조정했고, 김고기가 손잡이를 놓쳤을 때 말없이 한 발 가까이 왔고, 끝나고 나서 수건을 건네면서 "잘 하셨어요"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수건을 건넸다. 그것만 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작게.
이 선생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게 전부였다. 더 말하지 않았다. 잘했다고도, 내일 더 열심히 하자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김고기도 걸었다.
복도 유리 너머로 카페가 멀어졌다. 불고기 도시락도, 그 남자들도, 윤기 흐르던 갈색도. 형광등 빛이 바닥에 길게 깔렸다. 발소리가 두 개였다. 규칙적이었다. 허벅지가 아직 욱신거렸다.
내일도 이 복도를 걸을 것이었다. 내일도 트레드밀 위에 올라설 것이었다. 내일도 거울 속 그 얼굴을 봐야 할 것이었다.
괜찮은지 몰랐다. 아직은.
하지만 발이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