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junkim
진료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김고기는 의자에 앉은 채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손등에 핏줄이 굵게 돋아 있었다. 오십 년을 써온 손이었다. 삼겹살 집게를 잡고, 갈비뼈를 뜯고, 뚝배기 설렁탕 국물에 숟가락을 담그던 손.
의사는 아직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위점막 손상이 상당히 진행됐어요. 출혈 흔적도 있고요. 당분간은—아니, 어쩌면 앞으로는—육류 섭취를 완전히 중단하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 두 글자가 귓속에서 이상하게 울렸다. 김고기는 고개를 들어 의사의 얼굴을 바라봤다. 젊은 의사였다. 아마 고기가 인생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지 아직 모를 나이였다.
"선생님."
목소리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고기를 못 먹으면—"
말이 거기서 끊겼다. 뒤에 붙일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너무 많아서였다. 나는 뭘 먹고 살죠. 나는 누구랑 앉아 있죠. 나는 무슨 낙으로 아침을 시작하죠. 나는 도대체 뭘로 살았던 거죠.
창밖으로 11월의 하늘이 보였다. 납빛이었다.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아니면 맡고 싶어서 맡은 것인지도 몰랐다.
의사가 처방전을 내밀었다. 김고기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종이가 손끝에서 살짝 떨렸다.처방전은 병원 복도 끝 휴지통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김고기는 돌아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었다. 남편 박채소가 미리 채워놓은 것들이었다. 두부, 표고버섯, 애호박, 현미.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당신 몸이 먼저야. 내가 맛있게 해줄게. 글씨가 반듯했다. 늘 그런 사람이었다.
김고기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사흘을 버텼다. 버텼다는 말이 맞았다. 박채소가 끓여준 버섯 된장국을 숟가락으로 떴을 때, 입안에 뭔가 들어오긴 했다. 따뜻하고 짭짤하고—그게 전부였다. 씹을 것이 없었다. 저항이 없었다. 음식이 혀 위에서 그냥 사라져버렸다. 먹은 건지 마신 건지 알 수 없었다.
나흘째 아침, 박채소가 출근하는 소리를 들었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김고기는 외투를 입었다.
단골 정육식당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사장이 김고기 얼굴을 보더니 반색했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에요."
"등심 이인분이요."
목소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죄책감도, 설렘도. 그냥 목이 말라서 물을 찾는 것 같았다.
고기가 불판 위에 올라갔다. 기름이 튀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오는 순간, 오십 년이 한꺼번에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눈이 뜨거워졌다. 김고기는 젓가락을 들었다.
첫 점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세상이 하얘졌다.
쓰러지면서 불판 모서리에 팔뚝이 긁혔다. 뜨거웠다. 그것만 느껴졌다. 바닥이 차가웠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김고기는 천장을 보았다. 환풍기가 돌고 있었다. 고기 냄새가 아직 났다.
이렇게까지 해서.
생각이 거기서 잘렸다.눈을 떴을 때 천장이 하얬다.
병원 천장이었다. 김고기는 그것을 알았다. 냄새로 알았다. 소독약과 플라스틱과, 아무것도 없는 공기. 고기 냄새가 없는 공간에서 깨어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몸이 너무 무거웠다. 손가락 하나 올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링거 줄이 손등에 꽂혀 있었다.
박채소가 옆에 앉아 있었다. 눈이 부어 있었다. 말이 없었다. 김고기가 눈을 뜨는 것을 보고도 달려오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바라봤다. 그 눈빛이 무서웠다.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데서 온 표정이었다.
의사가 들어온 건 한참 뒤였다.
"위장 출혈이 재발했고, 쇼크가 왔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끝까지 하지 않아도 됐다.
"지금 선택하셔야 해요."
의사가 차트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집중 식이 재활 프로그램입니다. 입원해서 위장을 처음부터 다시 훈련하는 거예요. 석 달. 쉽지 않아요. 힘들다고 나가시면 다음엔 없습니다."
김고기는 천장을 보았다.
처음부터 다시.
오십 년을 살았다. 매일 아침 고기로 시작하고 고기로 끝냈다. 생일도, 제삿날도, 기쁠 때도, 무너질 것 같을 때도—언제나 불판 앞에 앉으면 됐다.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소리였다. 그게 자신이었다. 이름도 그랬다. 김고기. 웃기다고 했지만 부끄러웠던 적 없었다.
그런데 그걸 버리고 나면.
뭐가 남지.
"싫으면 어떻게 됩니까."
목소리가 건조했다.
의사가 잠깐 멈췄다.
"재발합니다. 그리고 다음엔 수술도 어렵습니다."
박채소가 그때 처음으로 손을 뻗었다. 김고기의 손 위에 살며시 얹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거기 있었다.
김고기는 눈을 감았다.
링거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었다. 심장 소리 같기도 했다. 아직 뛰고 있다는 소리.
고기 없이 사는 게 사는 건가.
모르겠었다. 정말 몰랐다.
하지만 바닥에서 눈을 감았을 때, 마지막으로 떠오른 건 불판이 아니었다. 박채소의 포스트잇이었다. 반듯한 글씨. 당신 몸이 먼저야.
김고기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언제 시작합니까."봄이 오는 것을 김고기는 냄새로 먼저 알았다.
재활 병동 창문은 남향이었다. 오전 열 시쯤 되면 햇볕이 비스듬히 들어와 침대 발치를 밟고 지나갔다. 처음 몇 주 동안 김고기는 그 햇볕을 그냥 흘려보냈다. 따뜻하다는 걸 알면서도 느끼지 못했다. 몸이 있고 감각이 있는데 세상이 유리 너머에 있는 것 같았다.
영양사가 처음 죽을 들고 왔을 때, 김고기는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드셔야 해요."
"압니다."
"그럼요?"
"압니다."
영양사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왔다. 그다음 날도. 말을 바꾸지 않았고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그냥 죽을 놓고 갔다. 사흘째 되는 날, 김고기는 숟가락을 들었다. 맛이 없었다. 그래도 들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위장이 받아들이는 음식의 종류가 늘어나는 속도는 더뎠다. 죽에서 미음으로, 미음에서 부드러운 두부로, 두부에서 익힌 채소로. 김고기는 매번 새로운 음식 앞에서 잠깐 멈췄다. 기대도 없고 거부도 없는 그 찰나의 정지. 그리고 먹었다.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온 게 아니었다.
여섯 번째 주, 영양사가 연근조림을 가져왔다. 김고기는 한 점을 씹었다. 아삭한 것이 이 사이에서 부서졌다. 씹을 것이 있었다. 저항이 있었다. 오래 씹었다. 단맛이 천천히 나왔다. 뒤에 약간의 쓴맛이 따라왔다가 사라졌다. 김고기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맛이 있는 게 아니었다. 맛이 보였다. 처음으로.
그날 저녁 박채소에게 전화를 했다.
"연근이 달더라."
수화기 너머에서 잠깐 침묵이 있었다.
"알고 있었어?"
"몰랐어."
박채소가 웃었다. 조용하고 작은 웃음이었다. 김고기는 그 소리를 한참 듣고 있었다.
퇴원하던 날, 봄이 이미 절반쯤 지나 있었다.
병원 입구 화단에 개나리가 피어 있었다. 노란색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도 개나리는 피었을 텐데, 김고기는 본 기억이 없었다. 아니, 보았겠지만 보지 않았던 것이다. 박채소가 옆에 서 있었다. 손을 내밀었다. 김고기는 잡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김고기는 아침마다 시장에 갔다. 처음엔 박채소가 함께 갔다가, 어느 순간부터 혼자 갔다. 가지를 고르는 법을 배웠다. 껍질이 팽팽하고 꼭지가 싱싱한 것. 표고버섯은 갓이 두껍고 안쪽이 하얀 것. 알게 된 것들이 쌓였다. 요리를 잘하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재료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고기 냄새가 나는 가게 앞을 지날 때가 있었다. 처음엔 걸음이 느려졌다. 나중엔 느려지지 않았다. 그냥 지나쳤다.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전처럼 자신을 삼키지 않았다. 그냥 거기 있다가 사라졌다. 상처가 흉터가 되는 것처럼.
첫서리가 내린 주말에 아이들이 왔다.
딸 김나물과 아들 김채가 각자의 배우자를 데리고 왔다. 오랜만의 가족 식사였다. 박채소가 며칠 전부터 장을 봤다. 김고기도 도왔다. 도토리묵을 쑤고, 버섯전을 부치고, 가지나물을 무쳤다. 손이 바빠지는 게 나쁘지 않았다.
밥상이 차려졌다. 여섯이 둘러앉았다. 박채소가 국을 떴다. 누군가 숟가락을 들었다. 이야기가 시작됐다. 딸이 웃었다. 아들이 밥을 두 번 더 떴다.
김고기는 도토리묵을 한 점 집었다. 간장 양념이 배어 있었다. 천천히 씹었다. 묵 특유의 서늘한 질감이 혀에 닿았다. 고소했다. 이것도 맛이었다.
밥상 끝에서 딸 김나물이 남편 손을 한 번 잡더니 조용히 말했다.
"엄마, 아빠."
목소리가 달랐다. 김고기는 고개를 들었다.
딸의 얼굴이 붉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표정이었다.
"내년 봄에 셋이 될 것 같아요."
식탁이 잠깐 조용해졌다.
박채소가 먼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눈이 빨개졌다. 아들이 누나를 쳐다봤다. 사위가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김고기는 딸을 바라봤다.
내년 봄. 봄이면 개나리가 핀다. 화단의 노란색이 떠올랐다. 퇴원하던 날의 햇볕이 떠올랐다. 링거 줄이 꽂힌 손 위에 얹혔던 박채소의 손이 떠올랐다. 바닥에 쓰러졌을 때 마지막으로 본 환풍기가 떠올랐다.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왔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김고기는 딸의 손을 잡았다. 말이 없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손이 따뜻했다. 식탁 위의 음식들에서 김이 올라왔다. 박채소가 코를 훌쩍였다. 누군가 웃었다. 그 웃음이 번졌다.
창밖에 바람이 지나갔다. 낙엽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고기는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국을 한 모금 마셨다. 따뜻했다. 속이 따뜻했다. 오십 년을 고기로 채웠던 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그 빈 자리에 지금 이것들이 들어와 있었다. 소리와 온기와 손의 감촉과 내년 봄이라는 말.
충분했다.
아직 모르는 맛이 많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