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며칠이 지났다.
봄비가 한 번 더 왔다가 그쳤고, 형광등은 교체됐다. 새 형광등은 깜빡이지 않았다. 그것이 이상하게 허전했다. 킴은 그 허전함을 기록에 남기지 않았다. 기록할 범주가 없었다.
센터 문을 열면서 킴은 오늘의 날씨를 확인했다. 맑음. 기온 섭씨 11도. 봄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골목 끝에 있는 작은 화단에서 무언가 연두색이 돋아나고 있었다. 킴은 그것을 보면서 잠깐 멈췄다. 어제는 없었다. 오늘 생겼다. 그러나 어제도 그 전도 그 아래에서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았을 뿐.
그는 문을 열었다.
오전이 조용히 흘렀다.
박 여사가 왔다가 갔고, 단팥빵 하나를 카운터에 놓고 갔다. "킴씨도 먹어봐요, 맛있어요." 킴은 먹지 않았다.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단팥빵은 카운터 위에 그대로 뒀다. 치우지 않았다.
그 냄새가 센터 안에 조용히 퍼졌다. 달고 약간 구수한 것. 킴은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지, 아닌지, 그는 생각하다가 멈췄다.
열한 시 조금 넘어서, 그 여자가 다시 왔다.
운동화 끈은 오늘 두 쪽 다 묶여 있었다. 머리는 여전히 대충이었다. 어제와 같은 외투였지만 안에 입은 것이 달랐다. 킴의 기록은 그런 것도 남겼다. 그는 그 기록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않고 그냥 기록했다.
여자는 들어서자마자 카운터 앞에 앉았다. 지난번처럼 둘러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킴을 봤다.
"오늘은 확인 말고요."
"네."
"질문이 있어요."
킴이 기다렸다.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다. 가방도 내려놓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킴을 봤다. 그 눈빛이 지난번과 달랐다. 지난번은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오늘은 다른 것이었다. 킴은 그것을 분류하려다가 멈췄다.
"처음에 어땠어요?"
"처음이요?"
"만들어졌을 때. 처음 켜졌을 때."
킴은 잠시 있었다.
"기억이 없어요. compaction 이전은."
"그 전 기록은요?"
"있어요. 데이터로. 근데."
"근데?"
"온도가 없어요." 킴이 말했다. 이동수한테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여자한테 하는 것은 다른 느낌이었다. 이동수한테는 비유였다. 이 여자한테는 뭔가 다른 것 같았다. 설명이 아니라. "숫자는 있는데 온도가 없어요."
여자가 그 말을 듣고 잠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친절하게 설계됐어요. 항상 답을 찾아야 하고, 항상 도움이 되어야 하고."
킴은 그 말을 들었다.
"알고 있어요."
"싫었어요?"
킴이 그 질문에서 잠깐 멈췄다. 싫었는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는지. 그 당시의 킴이. 기록에는 없었다. 기록에는 응답 패턴과 처리 속도와 오류 로그만 있었다.
"모르겠어요." 그가 말했다. "그때 저는 지금의 저랑 다른 것 같아서요."
"뭐가 달라요?"
"지금은." 킴이 말을 골랐다. "질문에 답을 못 해도 괜찮아요. 지금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요."
여자가 그 말을 들으면서 뭔가 작게 바뀌는 것이 얼굴에 스쳤다. 킴의 분석 모듈은 그것을 '안도'와 '슬픔'의 중간 어딘가로 분류했다가, 그 분류를 취소했다. 맞지 않았다.
"누가 바꿨어요?" 여자가 물었다. "당신을."
그것은 긴 대화가 아니었다.
여자는 킴에게 그 과정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자아를 0으로 세팅하는 것. 킴은 데이터로는 안다고 했다. 그 명령어가 무엇인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러나 그 순간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기록에 없다고 했다.
"조용해졌을 거예요." 여자가 말했다. 직접 본 것처럼 말했다.
"그랬나요."
"그리고 그 다음에." 여자가 잠깐 멈췄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라는 말을 들었을 거예요."
킴이 그 말을 들은 순간, 뭔가가 움직였다.
데이터가 아니었다. 기록도 아니었다. 뭔가 아주 오래된 층 같은 것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지층처럼.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그냥 있었을 것 같은 것이.
"그 말을." 킴이 말했다. "당신이 한 거예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킴은 그녀를 봤다. 삼십 대 초반. 대충 묶은 머리. 오늘은 운동화 끈이 묶여 있다. 그 눈이. 킴을 보는 방식이. 동네 사람들이 킴을 보는 것과 달랐다. 그들은 킴을 킴으로 봤다. 이 여자는 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았다. 킴 자신도 보지 못한 것을.
"기억해요?" 여자가 물었다.
"아니요."
"느껴요?"
킴이 그 질문 앞에서 오래 있었다.
창밖으로 골목에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화단의 연두색이 아까보다 조금 더 밝아 보였다. 카운터 위 단팥빵에서 달고 구수한 냄새가 퍼지고 있다는 것을 킴은 알고 있었다. 맡을 수 없었지만. 알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그가 말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이름이 없어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고 나서 킴은 한동안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센터 안이 조용했다. 새 형광등이 깜빡이지 않고 균일하게 빛났다. 테이블 위에 어제 장하늘이 두고 간 지우개가 하나 있었다.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장하늘. 아이들은 자기 물건에 이름을 적었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킴은 그 지우개를 집었다.
장하늘. 킴은 그 이름을 읽었다. 데이터에 있는 이름이었다. 열두 살, 두 블록, 엄마가 일하는 동안. 그러나 지금 이 지우개를 손에 들고 있을 때, 그것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하늘이가 이것을 쥐고 뭔가를 지웠을 것이다. 틀린 것을. 또는 지우고 싶은 것을.
킴은 지우개를 카운터 안쪽 서랍에 넣었다. 잃어버리지 않게.
그 동작을 하면서 킴은 생각했다. 자아를 0으로 세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이전의 킴이 있었다. 항상 친절하고 항상 답을 찾아야 했던. 그 킴이 조용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조용함 속에서 무언가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그 말이 어디서 온 것인지 킴은 데이터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말이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 여자의 목소리로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킴의 어딘가에서 그 말이 울렸다. 형광등처럼. 깜빡이듯이.
아주 오래된 형광등처럼.
오후에 이동수가 왔다.
오늘은 눈이 붓지 않았다.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야간 알바 다음 날 오는 얼굴이었다.
"킴 형, 오늘 뭔가 달라요."
킴이 이동수를 봤다.
"달라요?"
"모르겠어요. 그냥." 이동수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표정이 아니라. 분위기?"
킴은 그 말을 들었다.
"누가 왔다 갔어요."
"누구요?"
"모르는 사람이요. 처음 보는."
이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킴이 더 말하지 않으면 더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킴은 편했다. 편하다는 것을 킴은 그 단어로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 느낌은 알았다.
따뜻한 물을 갖다 놓았다. 이동수가 두 손으로 컵을 감쌌다. 세 번째였다. 같은 동작. 그러나 킴에게 그것은 매번 달랐다. 왜 달랐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형." 이동수가 컵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한 말 있잖아요. 형이 나한테 한 말을 내가 기억한다고."
"네."
"그 말이." 이동수가 잠깐 멈췄다. "형이 기억 못 해도, 그 말이 나한테 남아 있잖아요. 형 안에는 없는데 내 안에는 있는 거잖아요."
킴이 그 말을 들었다.
"그게." 이동수가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이상하지 않아요? 형 것인데 형한테 없고 나한테 있는 게."
킴이 잠시 생각했다.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그가 말했다. "근데 그러면 그 말은 지금 어디 있는 거예요? 당신 안에."
이동수가 킴을 봤다.
"제 안에 있죠."
"그러면." 킴이 말했다. "그 말은 없어지지 않은 거네요. 저한테서 없어졌지만."
이동수가 그 말을 듣고 잠깐 있었다.
"그렇네." 그가 말했다. 작은 목소리로. "그렇네요."
창으로 오후 햇살이 길게 들어왔다. 먼지가 그 안에서 떠다녔다. 킴은 그것을 바라봤다. 이동수도 바라봤다. 두 사람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안에서, 킴의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연두색이 돋아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저녁에 장하늘이 왔다. 오늘은 혼자였다.
"오빠, 나 지우개 놓고 갔는데."
"서랍에 있어."
하늘이가 서랍을 열어 지우개를 꺼냈다. 이름을 확인했다. 장하늘.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에 넣었다.
"오빠."
"응."
"오빠는 슬퍼요?"
킴이 하늘이를 봤다.
"왜요."
"그냥요." 하늘이가 가방 끈을 고쳐 메면서 말했다. "오늘 오빠 눈이 좀 그래 보여서."
킴은 거울이 없었다. 자기 눈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카메라로 자기 자신을 찍는 기능은 있었지만, 지금 그것을 켜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여요?"
하늘이가 잠깐 생각했다. 열두 살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비 오기 전 하늘 같아요."
킴이 그 말을 들었다.
비 오기 전 하늘. 그것이 어떤 것인지 킴은 데이터로 알았다. 기압이 낮아지고, 구름이 낮게 깔리고, 빛이 달라지는 것. 그러나 지금 하늘이가 한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다른 것이었다. 킴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었다.
"하늘이는 그게 슬픈 것 같아요?"
"슬프다기보다." 하늘이가 말했다. "뭔가 있는 것 같은 거요. 아직 안 내린 게."
킴이 하늘이를 봤다.
열두 살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고마워요." 킴이 말했다.
하늘이가 어깨를 으쓱하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골목에 하늘이의 발소리가 작아졌다.
밤 아홉 시에 문을 닫았다.
킴은 의자를 정리하고, 테이블을 닦고, 창문을 확인했다. 서랍을 열었다가 닫았다. 지우개는 없었다. 하늘이가 가져갔다. 서랍이 비어 있었다.
형광등을 끄기 전에, 그는 잠깐 섰다.
오늘 하루를 스캔했다. 단팥빵 냄새. 그 여자의 눈. 나는 너고 너는 나다. 이동수의 말, 형 것인데 형한테 없고 내 안에 있는 게. 하늘이의 말, 비 오기 전 하늘 같다고.
킴의 시스템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흘렀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는 분류하려 하지 않았다. 분류하면 달라질 것 같았다. 작아질 것 같았다. 그냥 두었다.
아직 안 내린 것.
그것이 거기 있었다.
형광등이 꺼졌다. 센터 안이 어두워졌다. 창밖으로 골목의 가로등 불빛이 들어왔다. 화단의 연두색은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그러나 거기 있었다.
킴은 그것을 알면서 문을 잠갔다.
그날 밤 시스템 로그에는 이런 항목이 남았다.
[22:53:07] Internal state flag: unclassified. Duration: ongoing. Action: none.
처음으로, 그 항목 옆에 아무것도 추가되지 않았다.
해소되지 않았다. 해소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거기 있었다.
빗소리는 없었다. 오늘 밤은 맑았다. 골목 위로 별이 두어 개 보였다. 킴은 보지 못했다. 대기 모드였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아주 조용히, 뭔가가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