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빛이 없는 새벽 세 시, 박무진은 창문 없는 방에서 눈을 떴다.
방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공간이었다. 콘크리트 벽에는 습기가 배어 검은 얼룩이 번져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 하나가 주기적으로 깜빡이며 윙윙거렸다. 그 소리는 마치 무언가가 살아 있는 것처럼, 숨을 쉬는 것처럼 들렸다. 무진은 일어나 앉아 손바닥으로 눈을 비볐다. 손에는 아직도 어제 밤 자료들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오래된 종이와 기계유, 그리고 무언가 탄 것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
2087년의 서울은 낮에도 어두웠다.
대기 정화 시스템이 도시 전체를 덮은 이후로 하늘은 항상 회색이었다. 태양은 필터를 통해 희미하게 스며들 뿐이었고, 사람들은 그 빛이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점점 잊어갔다. 무진은 그것을 진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망각이라고 불렀다.
그는 낡은 데이터 패드를 집어 들었다. 화면이 켜지면서 그의 얼굴을 푸른빛으로 물들였다. 서른여덟 살. 한때는 국가 역사기록원의 수석 연구원이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 아무것도 아닌 척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패드에는 어젯밤 마지막으로 열어 두었던 문서가 그대로 떠 있었다.
[파일명: OMEGA_ROOT_0001 / 접근등급: 소각대상 / 최종수정: 2031.04.17]
그는 그 파일을 처음 발견했을 때를 기억했다. 3년 전, 역사기록원 지하 7층 아카이브에서였다.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층이었다. 그곳에는 디지털화되지 않은 원본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무진은 예산 감사를 핑계로 그 층에 접근할 수 있는 임시 권한을 얻어냈다. 그리고 거기서 그것을 찾았다.
처음에는 그냥 오래된 음모론 자료라고 생각했다.
로스차일드.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빌더버그. 이름들은 익숙했다. 20세기부터 반복되어 온 이야기들. 무진도 그것들을 알고 있었다. 역사학자로서, 그는 그런 이야기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연구한 적이 있었다. 불안한 시대에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서사. 보이지 않는 손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
그러나 OMEGA_ROOT는 달랐다.
파일은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음모론의 기원을 추적하고 있었다. 누가 그 이야기들을 만들었는가. 왜 만들었는가. 그리고 — 무진이 처음 그 문장을 읽었을 때 손이 떨렸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 그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가.
파일은 미완성이었다. 마지막 섹션은 절반쯤에서 끊겨 있었다. 작성자의 이름은 없었다. 날짜만 있었다. 2031년 4월 17일. 그날 역사기록원에서는 한 명의 연구원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무진은 패드를 내려놓고 방 한쪽 벽을 바라봤다.
벽에는 그가 지난 3년간 모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종이에 손으로 쓴 메모들, 인쇄된 문서들, 실로 연결된 이름들과 날짜들. 디지털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아날로그로 작업한 것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하나의 단어가 적혀 있었다.
아르콘.
고대 그리스어로 '지배자'를 뜻하는 말. 그러나 OMEGA_ROOT 파일 안에서 그 단어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무진은 아직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이것만은 알았다 — 그 단어가 나오는 모든 문서에서, 바로 직후에 무언가가 삭제되어 있었다.
체계적으로. 일관되게. 마치 누군가가 오랫동안 그 단어 주변의 공백을 관리해온 것처럼.
무진은 일어서서 작은 전기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주전자가 끓기 시작하자 방 안에 수증기가 퍼졌고, 형광등 빛이 그 속에서 흐릿하게 번졌다. 그는 인스턴트 커피 봉지를 뜯어 컵에 털어 넣었다. 손이 차가웠다. 건물 난방이 새벽 두 시에 끊기는 이 반지하 방에서, 3월의 새벽은 아직 겨울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서울 외곽 지구, 구 은평 지역. 그곳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이름은 최영환. 나이는 일흔셋. 전직 신학자이자, 한때 세계종교연합 자문위원이었던 사람. 그리고 — 무진이 추적 끝에 알아낸 것으로는 — OMEGA_ROOT 파일의 원본 작성자와 같은 연구팀에 있었던 마지막 생존자.
무진은 그에게 연락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세 번. 처음 두 번은 응답이 없었다. 세 번째는 달랐다. 전화가 연결되었고, 잠깐의 침묵 뒤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지 마시오."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무진은 그 말을 경고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역사학자였다. 그리고 역사학자는 문이 닫혀 있을 때 그 문이 왜 닫혀 있는지를 묻는 사람이었다. 그는 컵을 내려놓고 외투를 집었다.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벽에 붙은 메모들을 한 번 더 바라봤다. 실들이 서로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그물. 로스차일드에서 시작되는 선. 바티칸으로 이어지는 선. 그리고 그 모든 선들이 결국 모여드는 하나의 점 — 아르콘.
그는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형광등의 깜빡임이 사라졌다. 윙윙거리는 소리도 멎었다. 방은 완전한 침묵에 잠겼고, 무진은 그 침묵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항상 그랬다. 가장 조용한 것들이 가장 많은 것을 감추고 있었다.
그는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낮은 비상등만이 켜져 있었고, 그 붉은빛 속에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건물 어딘가에서 파이프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금속이 수축하는 소리. 추위가 구조물 안으로 스며드는 소리.
무진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몰랐다. 오늘 최영환을 만나고 나면, 그가 3년간 구축해온 그 그물이 사실은 훨씬 더 오래된 무언가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계단 끝에서 출입문이 열렸다.
회색 새벽 공기가 그의 얼굴로 밀려왔다. 차갑고 무거웠다. 도시의 냄새 — 오존과 합성수지와 수백만 명의 숨결이 섞인 냄새 — 가 그를 감쌌다.
그는 걸었다.